
나치가 무서운 게 아니라 사람이 제일 무섭다
독일이 일으킨 전쟁 영화들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딱 하나입니다. "와, 진짜 사람이 사람한테 어떻게 저렇게까지 독하게 굴 수 있을까?" 인간성을 완전히 상실한 그 광기를 마주할 때마다 온몸이 서늘해집니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내가 만약 저 시대에 태어났다면, 저 지옥 같은 수용소에서 단 하루라도 제정신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솔직히 자신 없습니다. 그만큼 그 시대의 공포는 인간의 상식을 아득히 벗어나 있으니까요.
이번에 본 <소비보르 탈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단순히 죽고 죽이는 전쟁 영화가 아니라, 인간이 어디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밑바닥에서 어떻게든 존엄을 지키려 했던 사람들의 처절한 몸부림을 보여줍니다.
사람을 속여 가스실로 밀어 넣는 기만술
소비보르 수용소는 그냥 가두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절멸 수용소'라는 이름답게, 오로지 죽이기 위해 만든 공장 같았죠. 사람들에게 샤워하고 이주 절차 밟는다고 속여서 가스실로 몰아넣는 나치의 수법을 보면, 이건 정말 인간이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기록을 보니까 여기서만 25만 명이 죽었다고 하더군요. 그중에 딱 600명 정도만 일손이 부족해서 살려뒀는데, 그 사람들도 결국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파리 목숨이었습니다. 희망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그 절벽 끝에서 그들이 봉기를 결심한 건, 그냥 살고 싶어서가 아니라 '인간답게 죽고 싶어서'였을 겁니다.
영화 보다가 치밀어 오른 내 직장 생활의 기억
그런데 영화에서 나치 장교들이 수용자들을 기만하고, 서로 의심하게 만드는 꼴을 보니까 예전 직장 생활 할 때 정말 어이없던 기억이 확 올라오더라고요.
제가 그때 그곳에서 제일 오래된 직원이었는데, 제가 원래 말수가 좀 적고 묵묵히 일만 하는 스타일입니다. 그런데 새로 들어온 직원들이 제가 일 잘하는 게 꼴 보기 싫었는지, 사장한테 가서 말도 안 되는 시기 질투 섞인 거짓말들을 늘어놓았나 봅니다. 사장은 그 말만 믿고 저한테 와서 "퇴사했으면 좋겠다"는 소리를 하더군요.
진짜 황당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당당하게 이유가 뭐냐고 물었죠. 사장이 말하는 이유들을 듣고 하나하나 다 해명했습니다. 팩트로 조목조목 따지니까 사장도 그제야 자기가 오해했다는 걸 깨달았는지 미안하다고 사과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저한테 고자질한 그 직원들을 당장 자르겠다고 난리를 쳤습니다.
"날 못 믿는 사람이랑은 일 안 합니다"
사장은 다시 잘해보자고 붙잡았지만, 저는 거기서 정이 뚝 떨어졌습니다. 나랑 그렇게 오래 일해놓고, 새로 들어온 사람들 말 한마디에 휘둘려서 날 내치려고 한 사람 아닙니까? "나를 못 믿는 상사와는 더 이상 일 못 하겠다"고 딱 잘라 말하고 그 자리에서 짐 싸서 나왔습니다.
영화 속 소비보르 수용자들이 죽음이 빤히 보이는 지뢰밭으로 뛰어들던 모습이 제가 사표 던지던 그 기분과 묘하게 겹쳐 보였습니다. 물론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전장과 비교할 순 없겠지만, 나 자신의 자존심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모든 걸 걸고 결단하는 그 마음만큼은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을 도구로 보고, 왜곡된 정보로 사람을 판단하는 광기는 예나 지금이나 참 무섭습니다.
서사는 투박해도 메시지는 날카롭다
비평적으로 보면 이 영화는 조금 투박한 구석이 있습니다. 장면 연결도 매끄럽지 않고, 어떤 부분은 너무 한쪽 시각으로만 몰아붙이는 느낌도 줍니다. 특히 진실을 밝히려는 기자들이 무참히 죽어 나가는 장면은 시각적으로 꽤 충격적이었고 불쾌하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전 오히려 그런 거친 느낌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세련되게 다듬어진 영화보다, 당시 수용자들이 느꼈을 그 날 것 그대로의 분노가 더 잘 전달됐거든요.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
<소비보르 탈출>은 잘 만든 오락 영화가 아닙니다. 우리가 눈감는 순간, 그리고 서로에 대한 믿음을 잃는 순간 권력이 어떻게 괴물이 되는지 보여주는 기록이죠. 사람이 사람을 사냥하듯 죽이던 그 시절의 공포가 단순히 역사 책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느꼈습니다.
직장에서 겪었던 그 서늘한 배신감을 기억하기에, 영화 속 인물들의 탈출이 남 일 같지 않았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 자신을 잃지 말라는 것, 그리고 부당한 힘에 굴복하지 말라는 것. 그게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진짜 메시지 아닐까요? 비록 서사가 투박할지언정, 그날 밤 담장을 넘던 600인의 발소리는 오래도록 제 가슴에 남을 것 같습니다.
참고
이 글은 홀로코스트 기념관의 실제 기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