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비타민E 크림을 한 번 구매할 때 여러 개씩 사는 편입니다.
사이트에서 한 개씩 사는 것보다 3~4개를 한꺼번에 구매하면 가격이 저렴해지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계속 사용하는 제품이니 여러 개 사두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크림 한 통을 오래 사용했습니다.
새 제품을 꺼내려고 보니 사용기한이 이미 지나 있는 경우가 몇 번 있었습니다.
포장도 뜯지 않은 제품이라 버리기가 정말 아까웠습니다.
뚜껑을 연 것도 아니고 손으로 내용물을 만진 것도 아닌데 날짜가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버려야 하나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얼굴에 바르자니 찜찜해서 결국 버렸습니다.
그러다 궁금해졌습니다.
한 번도 개봉하지 않은 화장품인데 왜 사용기한이 있는 걸까요?
냄새나 색이 멀쩡하면 사용할 수 있는지, 냉장고에 보관하면 조금 더 오래 사용할 수 있는지도 궁금했습니다.
미개봉이면 화장품은 변하지 않을까요?
처음에는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개봉한 화장품은 손이나 공기에 계속 노출되지만 밀봉된 새 제품은 외부와 차단되어 있으니 훨씬 오래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개봉 여부는 중요합니다.
화장품을 개봉하고 손가락으로 크림을 덜어 사용하면 미생물이 들어갈 가능성이 생기고, 뚜껑을 열고 닫을 때마다 공기에도 노출됩니다.
미개봉 제품은 이런 외부 노출이 훨씬 적습니다.
하지만 자료를 찾아보면서 한 가지를 알게 됐습니다.
외부에서 무언가 들어오지 않는 것과 화장품 내부에서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다른 문제였습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화장품도 시간이 지나면서 변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보존제가 시간이 지나며 분해될 수 있고, 물과 기름을 섞어 만든 에멀전은 분리될 수 있으며 온도나 빛 등의 영향으로 색이나 질감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결국 밀봉 상태는 외부 오염 가능성을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제품 내부에서 일어나는 물리적·화학적 변화까지 멈추게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화장품 사용기한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사용기한을 단순히 업체에서 정해놓은 날짜 정도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제품의 보관기간을 결정하려면 일정 기간 동안 제품의 품질과 안전성이 유지되는지를 고려해야 합니다.
FDA에서도 화장품 제조사가 제품의 안전성을 뒷받침할 책임이 있으며, 제품의 보관기간을 결정하는 것도 제조사의 책임이라고 설명합니다. 업체에서는 서로 다른 온도와 습도 등의 조건에서 제품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시험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용기한에 대한 제 생각도 조금 달라졌습니다.
표시된 날짜는 제품이 갑자기 변하는 시점을 뜻하기보다 제조사가 제품의 안정성을 확인한 기간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보는 편이 적절했습니다.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소비자인 제가 사용기한이 지난 제품을 보고 앞으로 얼마 동안 원래 상태가 유지될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냄새와 색이 멀쩡하면 사용해도 될까요?
사용기한이 지난 미개봉 크림을 발견했을 때 저도 가장 먼저 제품 상태부터 확인했습니다.
새 제품이고 색도 그대 로고 이상한 냄새도 나지 않는다면 사용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물론 색이 변하거나 이상한 냄새가 나고, 크림이 분리되는 등 눈에 보이는 변화가 있다면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FDA에서도 화장품에서 좋지 않은 냄새나 색의 변화 등이 나타나면 제품에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냄새와 색이 멀쩡하다고 해서 제품이 처음과 완전히 같은 상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보존 시스템이 제대로 유지되고 있는지, 특정 성분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남아 있는지 같은 부분은 눈으로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품을 열어보고 냄새와 색을 확인하는 것은 이미 크게 변한 제품을 발견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안전성을 확인하는 검사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제가 여러 개 사두었던 비타민E 크림은 어떨까요?
제가 가장 자주 사용기한을 넘겼던 제품은 비타민E 크림이었습니다.
그래서 비타민E라면 비교적 오래 보관해도 괜찮은지도 궁금했습니다.
관련 자료를 찾아보니 비타민E 역시 어떤 형태로 사용됐는지에 따라 안정성에 차이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화장품에서 많이 사용되는 토코페릴아세테이트는 비교적 안정적인 비타민E 유도체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비타민E 크림은 비타민E 하나만 들어 있는 제품이 아닙니다.
물과 오일, 보습성분, 유화제, 보존제 등 여러 성분이 하나의 제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비타민E라는 한 가지 성분이 안정적인지를 보는 것보다 완성된 크림의 사용기한을 확인하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제품 이름에 비타민E가 들어간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크림보다 오래 사용할 수 있다고 판단할 근거는 없었습니다.
사용기한이 지난 크림을 바르면 피부에 문제가 생길까요?
이 부분이 가장 궁금했습니다.
사용기한이 지난 미개봉 크림을 한 번 바르면 바로 피부에 문제가 생기는 걸까요?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제품마다 성분과 제형, 보관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표시된 날짜가 지났다고 모든 화장품에서 즉시 문제가 발생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반대로 '미개봉이니까 괜찮다'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보존제의 효과가 떨어지면 미생물 증식 가능성이 커질 수 있고 제품의 성능이나 안정성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습니다. FDA 역시 보존제가 시간이 지나면서 분해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화장품을 사용한 뒤 예상하지 못한 발진이나 붉어짐, 화끈거림 같은 피부 반응이 나타나는 것도 주의해야 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용기한이 지난 제품을 사용하면 반드시 부작용이 생긴다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의 안전성과 원래 성능을 소비자가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 때문에 새 제품이라 아깝더라도 얼굴에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냉장고에 보관하면 사용기한을 늘릴 수 있을까요?
사용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제품을 냉장고에 넣으면 더 오래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냉장보관을 한다고 제품에 표시된 사용기한 자체가 연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화장품의 안정성은 제품의 성분과 제형, 용기, 제조사가 설정한 보관조건 등에 따라 달라집니다.
FDA에서도 온도 변화가 화장품의 색과 질감에 영향을 줄 수 있고 높은 온도에서는 보존제가 더 빨리 분해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화장품을 냉장고에 넣으면 더 오래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별도의 냉장보관 안내가 없는 제품이라면 제품에 표시된 보관방법을 따르는 것이 기본입니다.
특히 이미 사용기한이 지난 제품을 냉장고에 넣는다고 다시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냉장보관은 사용기한이 지난 화장품을 다시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여러 개 사두고 버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료를 찾아보고 나니 해결 방법은 사용기한이 지난 뒤에 찾는 것보다 구매할 때부터 계산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었습니다.
특히 저처럼 묶음으로 구매하면 가격이 저렴해지는 제품이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크림 한 통을 다 사용하는 데 4개월 정도 걸린다면 4개를 사용하는 데는 약 16개월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구매할 때 단순히 남아 있는 사용기한만 볼 것이 아니라 마지막 제품을 사용할 때까지 충분한 기간이 남아 있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저는 예전에는
한 개 가격 × 구매 개수 = 얼마나 저렴한가
만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여기에 하나를 더 보려고 합니다.
한 통 사용하는 기간 × 구매 개수 = 전부 사용하는 데 필요한 기간
4개를 묶어서 사면서 몇 만 원을 아꼈더라도 마지막 한두 개를 사용하지 못하고 버린다면 실제로는 저렴하게 산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제가 여러 번 버려보고 나서야 알게 된 부분입니다.
새 제품이라는 이유만으로 계속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미개봉 비타민E 크림을 버릴 때마다 아까웠던 이유는 정말 새 제품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포장도 그대로이고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으니 버리지 않아도 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자료를 찾아보면서 미개봉과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같은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미개봉 상태에서는 사용하면서 생기는 외부 오염 가능성을 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일어날 수 있는 성분과 제형의 변화까지 완전히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사용기한이 지났다고 모든 화장품에서 바로 문제가 생긴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문제는 소비자가
'이 제품은 아직 괜찮다'
라고 판단할 수 있는 정확한 기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사용기한이 지난 미개봉 제품을 어떻게 사용할지 고민하기보다 처음부터 너무 많이 사두지 않는 방법을 선택하려고 합니다.
특히 이번에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이것입니다.
새 화장품이라는 것은 '사용하지 않았다'는 뜻이지, 만들어진 순간의 상태가 그대로 멈춰 있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할인 때문에 화장품을 여러 개씩 구매한다면 할인율만 볼 것이 아니라 마지막 한 통까지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인지를 먼저 확인하는 것이 오히려 돈을 아끼는 방법일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
미국 식품의약국(FDA), Shelf Life and Expiration Dating of Cosmetics
FDA 화장품 보관기간 및 사용기한 자료
미국 식품의약국(FDA), Using Cosmetics Safely
FDA 화장품 안전 사용 안내
Keen MA, Hassan I. Vitamin E in dermatology. Indian Dermatology Online Journal.
비타민E 관련 연구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