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서 며칠이 지났는데도 자꾸 생각이 나는 경험은 다들 한 번쯤 있으실 겁니다. 저한테는 <블라인드 사이드>가 딱 그런 영화였습니다. 처음엔 그냥 감동적인 스포츠 영화라고만 생각했는데, 보고 나니 단순히 좋았다는 말로 끝낼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이 남더라고요. 특히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더 깊게 와닿았지만, 영화 속 장면들을 보면서 자꾸만 우리 아이의 중학교 시절이 겹쳐 보여서 마음이 참 뭉클했습니다. 하지만 실화를 찾아보는 과정에서 역시 영원한 아름다움은 없다는 것을 또 느꼈습니다.
이제 실화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입양이 아닌 후견인 관계였습니다.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가족으로 완전히 입양된 것처럼 그려집니다. 하지만 실제로 Michael Oher과 투오이 가족은 법적으로 입양 관계가 아니라 후견인 관계였습니다. 이는 부모와 자식 관계가 아니라 법적 권한을 대신 행사하는 구조입니다. 이 부분은 영화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은 중요한 사실입니다
이미 유망했던 선수였습니다. 영화에서는 미식축구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가족의 도움으로 성장한 것처럼 묘사됩니다. 하지만 실제 마이클 오어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미 유망 선수였고 여러 대학에서 관심을 받고 있던 상태였습니다. 즉 처음부터 가능성이 있었던 인물입니다. 성공의 이유는 한 가지가 아닙니다. 영화에서는 가족의 역할이 크게 강조됩니다. 물론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는 개인의 노력과 기존 능력 환경 변화 여러 요소가 함께 작용한 결과입니다. 모든 성공을 한 가족의 영향으로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영화 이후 발생한 법적 분쟁
이 부분은 영화에서는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후 마이클 오어는 자신이 입양된 줄 알았으나 실제로는 후견 관계였다는 점과 영화 및 관련 수익에 대한 문제로 법적 분쟁을 제기했습니다. 이로 인해 이 사건은 단순한 감동 실화에서 복잡한 현실 이야기로 이어지게 됩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사를 찾아보고 다큐를 보면서도 시합이 끝나고 같이 사진 찍고 같이 포옹하고 응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했고 세상에 저렇게 베푸는 사람이 있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이건 무엇때문에 일어 난 일일까요? 마이클 오어는 유명한 선수였습니다. 한해에 벌어들이는 수익이 약 우리 돈으로 400억 정도 한다고 합니다. 어마어마한 금액이죠? 그런데 왜 영화 개봉 후 영화 수익금으로 싸우게 된 걸까요?
사실 이 영화가 세계적으로 흥행할지는 아무도 예상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망한 영화들도 많으니까요. 영화 수익구조는 거의 대부분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은 주인공들에게 일정 부분의 금액을 주는 게 거의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대박 난 영화 같은 경우는? 어마어마한 수익 때문에 배가 아플 겁니다. 이걸 수익 배분으로 했으면 마이클 오어는 지금 받은 금액보다 10배는 더 받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그래봐야 한해 벌어들이는 수익보다는 훨씬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그런데 왜 소송을 계속 진행하는지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서로 본인들만의 사정이 있을꺼라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의 일상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만, 코로나가 세상을 뒤덮었던 그 시절 저는 정말 매일 아침 지옥을 맛보는 심정이었습니다. 누구보다 성실했던 우리 아이가 학교와 학원이 닫힌 틈을 타 인터넷 게임에 빠지고, 소위 말하는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을 때 부모로서 느낀 무력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억지로 아이를 깨워 옷을 입히고 학교 교문 앞까지 데려다주고 돌아서는 길, 아이의 축 처진 뒷모습을 보며 저는 매일 기도했습니다. 제발 오늘 하루만 사고 없이, 무사히 학교 안에만 있다가 돌아오라고 말이죠. 그때 제가 느꼈던 공포는 아이가 인생이라는 궤도에서 영영 이탈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이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밤거리를 혼자 걷던 영화 속 주인공 마이클 오어의 모습을 보며 우리 아이도 저렇게 보낸 시간이 있을 것 같아 맘이 아팠습니다
절망 속에 나타난 손길
그 절망의 끝에서 우리 가족에게 손을 내밀어 준 분이 바로 중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이셨습니다. 선생님은 참 지독하리만큼 따뜻한 분이셨죠. 매일 아침 아이가 학교에 왔는지 확인하고 저와 통화하며 마음을 써주셨던 그 정성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고마웠던 건, 학교라는 공간을 힘들어하며 겉도는 아이를 위해 선생님이 내놓으신 묘책이었습니다. 아이가 교실 안에서 숨 막혀할 때면, 선생님은 아이가 병원에 가야 한다는 핑계를 대서 직접 조퇴를 시켜주셨습니다. 사실 진짜 몸이 아픈 건 아니었지만, 선생님은 아이가 학교라는 울타리를 완전히 부수고 나가지 않도록 공식적인 숨구멍을 열어주신 것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아이는 학교를 아주 등지지 않을 수 있었고, 선생님의 배려 속에서 조금씩 마음의 안정을 찾았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며 영화 속 리 앤이 마이클을 위해 학교 코치들을 설득하고 그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던 모습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리 앤이 마이클에게 따뜻한 침대를 선물했다면, 선생님은 우리 아이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선물을 주신 셈입니다. 만약 그때 선생님이 요즘 애들은 다 그렇다며 방관하거나 포기하셨다면, 우리 아이는 아마 중학교 졸업장조차 받지 못했을 겁니다. 선생님이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붙잡아주신 덕분에 아이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평범하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졸업장을 손에 쥐며 성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영화 속 가족은 비즈니스 논란에 휩싸였을지 몰라도, 우리 아이 선생님이 아이를 병원 핑계로 조퇴시켜 주며 지켜내려 했던 그 진심만큼은 어떤 계산도 없는 순수한 인류애였으니까요.
미식축구 경기에서 쿼터백이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블라인드 사이드라고 부릅니다. 우리 아이에게는 코로나 시기가 바로 그 사각지대였고, 선생님은 그곳에서 달려드는 위험들을 몸소 막아준 든든한 보호자였습니다. 부모인 저조차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에 아이의 손을 놓지 않았던 그 선생님처럼, 저도 이제는 누군가의 사각지대를 지켜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거창한 기적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매일 아침 안부를 묻고, 아이의 힘든 마음을 살펴 적절한 핑계라도 대줄 수 있는 그 유연하고 따뜻한 마음들이 모여 결국 한 사람의 세상을 구하는 것이 아닐까요. 씁쓸한 현실 소식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여전히 아름답게 기억되는 건, 아마도 우리 곁에 계신 선생님 같은 조력자들의 온기가 영화 속 장면들마다 녹아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참고: ESPN, AP통신, 뉴욕타임스 등 미국의 주요 언론사 보도